은행의 사생활 밖으로


박혜정, <은행의 사생활 : 서민들만 모르는 은행거래의 비밀> (다산북스, 2009)

이런 재테크 관련 서적은 빌려놓고도 잘 안 읽게 되는데(슬금슬금 피하는 것 같다), '이 한 권 독파해서 나도 재테크 여왕이 돼봐야지!'하는 부담이 커서 그런 것 같다. 그냥 슬렁슬렁, 내게 필요한 부분만 발췌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이 책도 그런 마음으로 집어들어서 유용한 정보를 꽤 얻을 수 있었다.

활황기엔 펀드 위주로 투자해왔는데(투자라는 개념이 있었다기보다 그냥 적립식으로 적금들듯이 넣었다), 작년말 외환위기 이후로 수익률이 엄청 떨어진 외국계 펀드는 불입중지하고 그냥 cma나 입출금 통장에 꽁꽁 묶어두게만 되는 것 같아 답답했다. 물론 이 책에서 어떻게 투자하라는 직접적인 조언을 얻은 건 아니지만, 잘 모르면서 무작정 해왔던 것들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긴 펀드명을 통해 펀드에 대한 정보 읽기, 통장 쪼개기 방법, cma의 종류들, 추천할 만한 보험상품 같은 것(여기서는 연금보험과 의료실비보험을 추천). 그리고 은행에 자주 들르면서 리플렛이라도 집어들어 새 투자상품에 대한 정보를 얻고, 은행직원과 친해져서 고급정보를 얻으라는 것..(-이건 좀 어려울듯하다;; 이 책에서는 적금 상품의 정해진 금리도 은행직원에게 부탁해서 조금은 상향해서 가입할 수 있다는데, 뭐 아주 vip도 아니면서 "금리 좀 올려주세요~" 말하기 좀 어렵지 않을까;;)

돈을 그냥 묶어두고 예금이자만 받고 있어도 마음이 아무렇지 않다면 이런 정보들을 몰라도 되겠지만, 신문 경제면을 들춰봤을 때 모르는 말이 많아 답답하고 나만 뒤떨어져 있는 느낌이 든다면 상식 수준으로는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요즘 읽은 심리치유에세이 두 권 밖으로


박미라, <천만번 괜찮아> (한계레출판, 2007)

소설가 김형경과 함께 한겨레에서 '형경과 미라에게'라는 심리상담코너를 운영했던 박미라 씨가 사례별 심리 고민&답변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건 심리치유에세이에도 글솜씨가 중요하다는 것! 유익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해서 무조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형경의 <천 개의 공감>에 비해 임팩트가 크지 않은 느낌이다. 다 좋은 내용이지만 그냥 나에겐 별로 안 와닿는 것 같은.. 어쩌면 나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사례가 적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도움되는 점은 꽤 있었다. '이프'의 첫 편집장이었고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인지 여성의 입장을 많이 대변해주는 부분도 있다.

이무석, <나를 사랑하게 하는 자존감> (비전과리더십, 2009)

국제정신분석학회에서 인정한 국내의 국제정신분석가는 5명 뿐이라고 하는데, 이 책의 저자가 그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이런 류의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 이 분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았다. 그런데 글을 상당히 쉬우면서도 명료하게, 잘 쓰는 편이다. 마을문고에서 빌려놓고 한 번 들춰봤다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이건 어쩌면 이 책이 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요즘(엔 더욱 그렇긴 하지만 사실 지금까지 쭈욱) 나보다 잘난(혹은 잘나 보이는) 남과의 비교에 지쳐버린 내겐 자존감 회복이 절실했다. 낮은 자존감의 뒤편엔 열등의식이 있는데, 열등의식은 꼭 객관적으로 못난 사람이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열등감은 관점의 문제라고. 유년기에 부정적 경험으로 상처받은 내면의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어서까지 나의 심리적 현실을 지배하게 되는 것. 하지만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도 똑같은 열등감에 시달리진 않는다. 결국 열등감의 배면에는 '내가 남보다 잘나야 한다'는 욕심이 숨어 있다. 남보다 잘나야만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직면하고 내 가치를 확인해야 한다. 당연한 소리인 건 누구나 알지만 이런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득력 있게 안내되어 있다. 인상깊은 구절이 많지만 대부분 사례와 얽혀 있어 그 맥락과 함께 전부 발췌하기 어렵고, 말도 안 되는 심리적 현실이 나의 실제 현실이 되어버린 사례 하나만 옮겨적는다.

extracts :

어느 날 E부인은 불과 한 시간만에 세 번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경험을 했다. 시장에 가려고 관리사무소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관리소장이 어떤 젊은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새로 이사 온 사람 같았다. 그런데 그 여성이 예쁘고 지적이고 아주 세련되어서 물어볼 것도 없이 대졸로 보였다. 그녀는 갑자기 마음이 위축되었다. 대졸 앞에 선 고졸이었다. 마치 여왕 앞에 선 시녀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E부인은 관리소장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지만 소장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자존심이 팍 상했다. '내가 고졸이라서 인사도 안 받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중략)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관리소장이 E부인의 학벌을 알 리가 없었다. 자기 혼자 하는 생각일 뿐이었다. 비현실적인 생각이었다. 인간에게는 두 개의 현실이 있다. 하나는 실제적 현실이다. 객관적 현실이다. 관리소장이 부인이 고졸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 실제 현실이다. 다른 하나는 심리적 현실이다. 마음이 만들어 낸 주관적 현실이다. E부인에겐 관리소장에게 자신의 학력 때문에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 심리적 현실이다. 아무런 현실적 근거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실제적 현실이 아니고 심리적 현실이다. 그래서 부인은 근거 없는 줄 알면서도 무시당한 사람처럼 상처받고 있었다. ('내가 고졸이라고 무시하나? : 학벌 열등감' 편에서)


월화드라마 잡담 밖으로



<선덕여왕>은 챙겨보고, <천사의 유혹>은 오며가며 가끔 보고 있는데 둘 다 재미있다.

먼저 <천사의 유혹>-이 드라마는 인물들의 혼잣말로 많은 사건이 진행되는 듯하다. 덕분에 안 보다 보더라도 혼잣말로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이소연은 혼잣말만 안 중얼거렸어도 남이 몰랐을 일들을 자기가 다 말해버린다. 그리고 웃긴 게 복수를 한다면서 일처리가 너무 허술하다. 자기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어 조심히 대해야 할 사람도 조금만 수틀리면 완전 막 대하고 버려 버리고. 의심 받을 행동을 하고는 임기응변으로 어떻게 모면은 하는데 그걸 믿는 다른 사람들이 너무 멍청한 것 같다. (<아내의 유혹> 장서희는 점 하나 찍고 나와서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한 것 말고는 이렇게까지 심하진 않았는데.. 또 복수의 표적 외엔 주변 사람들한테 잘했다. 근데 이소연은 자기 편한테도 막무가내다.) 연기라고는 매회 놀랄 일이 많아 완전 크게 뜬 두 눈만 기억난다. 어쨌든 보고 있으면 시간은 잘 간다. 어제는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죽는 날이라 처음부터 보려 했는데 이거 예고편 보느라 처음을 살짝 놓치기까지 했다는..

<선덕여왕>은 미실 죽음 이후로 보기 싫어질 것 같다. 연장 얘기가 나오면서부터 질질 늘어지기 시작했다. 무슨 사건 하나 벌어질 때마다 왕실 반응, 화랑들 반응, 낭도들 반응, 하나하나 보여주는데 유머코드라고 넣은 것도 별로 재미없고- 그나마 미실 측 나올 때가 제일 흥미로웠는데 이젠 무슨 재미로 보나.

소위 '연기 잘 하는 배우'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편인데 이 드라마에서 고현정은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을 듯. 미실 자체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표현할 여지가 풍부한 캐릭터이긴 하지만 입꼬리 올리는 거 내리는 거 하나하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발성 톤을 보면 징그럽게 연기 잘한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에 비해 이요원은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이예." 이거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웃는 표정과 굳어진 표정 두 개밖에 없다. 시나리오의 문제인지 연기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지만, 덕만이 왕이 되기를 별로 바라게 되지도 않고 그녀가 괴로워할 때도 감정이입이 잘 안 된다. 그에 비해 미실이 성골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제대로 된 꿈을 꾸어보지조차 못한 것을 한탄할 때는 함께 안타까워할 수 있었다.

이 드라마에서 성격적으로 잘 묘사된 캐릭터가 미실과 더불어 비담인 것 같다. 비담은 어린 시절에 사랑을 못 받아 그런지 여기저기에 감정적으로 치대는 게 좀 짜증스럽게 느껴지지만,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이해는 된다. 그 외엔 처음에는 흥미로운 캐릭터였던 춘추도 덕만 편이 되면서 밋밋해졌고, 유신은 원래부터 그랬고, 멋있었던 알천랑도 이상하게 매력이 확 떨어졌다. (엄태웅도 소위 연기파 배우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역할을 맡으니 연기 논란에 휩싸이게 되는구나.) 극의 중심이 덕만의 성장에서 덕만의 정치로 이동하면서 활력이 많이 떨어진 듯하다.

그나마 미실 연기 보는 재미에 봤는데, 앞으로는 무슨 낙으로 봐야 하나. 미생과 염종의 변태스러운 연기? (우리신랑 주특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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