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먹다 밖으로


김진규, <달을 먹다> (문학동네, 2007)

요즘 드라마 '이산'을 즐겨 보고 있어 정조 시대에 관심을 갖고 있던 중,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여 구입하게 됐다. 실상 내가 생각했던 궁중 안의 미스터리 따위를 다룬 소설은 전혀 아니었고, 정조·순조 시대가 풍속사의 배경처럼 드리워져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폭넓은 독서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도 이 소설은 다양한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 무심한 듯 고아한 문체는 초반부터 김훈을 확연히 연상시켰으며(안 그래도 수상작가 인터뷰에 김훈의 소설에 영향을 받았다고 나온다), 여러 인물의 시점을 통해 이야기가 서술된다는 점에서는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선이-하연-향이·난이로 이어지는 여인 3대의 수난은 천명관의 '고래'를 연상하게 했다. 또 약국 주인에게 실성과 불행이 덮친다는 것은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을 떠올리게 했다. (허약하고 예민한 체질의 남자라면 약국 주인이 딱 알맞은 것인지...) 물론 기시감을 일으킨다는 것이 꼭 창의력 부재라는 건 아니다.

당대의 생활사를 미려하게 풀어낸 것이 이 소설의 미덕이라면, 모든 인물이 지나치게 심각한 것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좀 무거웠다고 할까? 인물들은 금지된 사랑을 하고, 사랑을 이루지 못하면 죽거나 미치거나 병에 걸리고, 순탄하게 결혼을 해서는 또 따뜻한 정을 붙이고 살지 못한다. 부인에게 살가운 남자는 하나도 없이 모두 예민하거나 불덩이를 품고 있으며, 여인들은 가슴을 치며 항상 제 탓을 한다. 물론 그렇기에 이야기가 유장해지는 측면은 있겠으나, 어쩌면 이것은 나의 소설 읽는 개인적인 취향에서 나온 불만일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작가의 균형감각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탓도 있을 것 같다. 모두가 이렇게 심각하고 무겁고 어두우니,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머리가 상쾌하지 못하다.

근친간의 사랑이라는 비슷한 소재를 다룬 김동리의 '역마'를 떠올려본다. 계연이가 좀 평면적으로 그려지긴 했으나 마지막에 성기의 육자배기 가락 속에 한이 녹고 질긴 인연의 실타래가 풀리는 듯한 느낌이 있다. '젊은 느티나무'도 있다. 물론 이들은 진짜 피가 섞인 혈육이 아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비누 냄새'와 '느티나무'라는 소재가 주는 산뜻함이 이들의 사랑을 포장해준다. 이들 작품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 비해서 '달을 먹다'는 완전 정면 승부다. 그래서 읽는 동안 좀 더 피로했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작품에의 몰입도도 좋고, 인물 간의 관계도 촘촘하여 전체적인 완성도가 있는 소설이라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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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미나 2008/01/13 03:21 # 삭제 답글

    안 본 사이에 새 글이 세 개나 주르륵 올라와 있었네;;
    '젊은 느티나무' 좋았지. 별로 풍요로운 시대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가난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어.
    새 아버지, 새 오빠도 어찌 생각하면 참 껄끄럽고 불편할 텐데, 어두운 분위기가 아니라서도 좋았고.
    새 오빠의 버럭 모드도 낭만적이고.
    언급된 책 중 읽은 것은 이것 하나로군. 호호호;;
  • bluebaby 2008/01/14 00:39 # 답글

    미나 / 오랜만이군.^^ 다음에 만나게 되면 김훈 책을 빌려줄게. 중후하면서도 마초적인 것이 아주 너도 좋아할거야.
  • 해라 2009/10/12 16:43 # 삭제 답글

    <달을 먹다><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의 작가 김진규, 3일간 온라인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갖습니다^^
    10월 14일~10월 16일간 덧글로 질문 남겨주시면 선생님께서 답글 남겨주실거예요.
    책을 보면서 평소에 궁금했던 거 마.음.껏^^ 물어봐주세요!
    http://cafe.naver.com/mhdn/8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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